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자이 돌격 (문단 편집) ==== 미군, 영연방군 ==== 당시 10대 후반~20대의 미군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영연방군 병사들은 지옥 같았던 [[대공황]]을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세대였다. 대공황 당시를 살아간 세대는 남녀노소, 심지어 10살 남짓한 어린아이까지 단순히 먹고살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거친 현대 산업사회의 풍파 아래 돈을 벌어 살아남기 위해서' 길거리나 농장, 어선 등 어디서든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방임주의]]가 최전성기를 이루던 당대 미국 사회에서는 그저 길거리에 나앉아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영화나 소설 등에서 자주 나오는 구두닦이나 "호외요 호외!"를 외치며 신문을 파는 어린이들은 그 당시 어두운 현대 사회상의 반영이다. 한 마디로 일본군 선전물에 흔히 나오는 "[[프로파간다|호의호식하고 살던 군기 풀린 귀축영미놈]]"이란 건 그냥 일본군의 [[망상|머릿속 상상이었다]]. 그래서 비록 다른 세대에 비해 체격적 조건은 다소 부실했을지는 몰라도, 당시의 미국과 영연방군 청년들은 미국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깡다구와 의지가 넘쳐흘렀다. 위의 문단에서 나온 거짓말 같은 무쌍난무는 체력 조건뿐 아니라 이런 정신적인 배경이 있어서였다. 심지어는 유럽 전선으로 간 일본계 미국인 부대도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로 인해 차별받고 수용소에 갇힌 가족들을 생각하며 진정한 미국인이자 미국 사회의 국민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지와 깡이 넘쳐흘렀다. 당시 남녀노소 출신인종 가릴것 없이 미국인들의 이런 한 민족이라는 국민적 정체성과 정신적 저력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더 나아가 종전 뒤의 황금기를 두 손으로 일궈낸 인적 자원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현재도 미국 역사상 '[[https://en.wikipedia.org/wiki/Greatest_Generation|가장 위대한 세대]]'란 칭송을 들으며 전반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침체기를 겪는 현대의 미국인들이 끊임없이 다시 돌아보고, 교훈을 얻어 미래에 대한 발전과 비전의 [[이데아]]를 얻으려는 세대이다.] 그리고 미군과 영연방군은 90% 이상이 자원입대자였다. 물론 대공황 때문에 먹고 살기가 힘든 탓도 있었다. 군대로 가면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니까 가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미군은 예전부터 가진거 없고 배운거 없는 이민자들이 지원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남북전쟁]]처럼 짬밥이 서민식보다 풍족해서 입대하는 일도 많았다. 즉 어떻게 하든 죽을 운명인데 군대를 안가면 없는 일자리만 찾아 헤매 돌다가 불명예스럽게 굶어죽을 판국이지만 군대를 가면 적어도 죽기 전까진 먹을거는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면서도 살면 좋고 죽어도 명예롭게 죽을 수 있었으니 어느 쪽이 더 이득일지는 [[안 봐도 비디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진주만이 초토화된 모습을 보며 나라 전체가 "12월 7일을 기억하라! 진주만을 기억하라!"나 "반드시 저 비겁하고 악랄한 노랭이 원숭이 XX 놈들에게 아시아의 우리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다시금 수복하자!!" 며 뿌리깊은 복수심과 분노에 활활 타오를 때는 완전히 달랐다. [[과달카날 전역|과달카날]]에서는 이것보다 한술 더 떠서 [[윌리엄 홀시|"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번역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들을 더 많이 죽이는 겁니다!''']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놓고 외친 호전미 넘치는 제독]]도 있었고 국민들은 대환호했다. 덤으로 이 제독이 진주만의 참상을 진주만의 해군 기지 밖에서 가장 먼저 본 제독이기도 한데 이 때 한 말은 '''"[[일본침몰|이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쓰는 언어가 될 것이다]]"'''였다. 대학생의 경우 [[리처드 파인만]]도 입대하려고 신검을 봤다가 특유의 사고방식과 사상이 문제가 돼서 떨어졌고, 대신 [[맨하탄 프로젝트|다른 방법으로]] 복무해 국가에 공헌했다. 연예인은 헐리우드 최고의 아이돌이었음에도 위험천만한 [[폭격기]] 조종사로 임관한 [[제임스 스튜어트]]나 [[클라크 게이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히틀러는 "게이블이 탄 폭격기를 잡으면 훈장이던 상금이던 뭐든지 주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미군 폭격기 승무원들은 25회를 채우면 제대했지만, 그 절반도 못채우고 전사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대표적으로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밥 펠러]]는 라디오에서 [[진주만 공습]]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입대 신청을 해서 해군 [[대공포]]병으로 무려 8개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참고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기에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는데도 자원입대한 것이다. 메이저 리거들도 당시 전쟁에 참여한 수가 340명에 달했으며(팀당 20명 정도 수준) 그 명단에는 [[테드 윌리엄스]], [[스탠 뮤지얼]], [[조 디마지오]], [[행크 그린버그]], [[피 위 리즈]] 등 당대의 스타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상류층 자제까지 예외가 아녔는데 대표적으로 [[존 F. 케네디]]와 [[조지 H. W. 부시]] 두 사람 모두 자원입대이며, 안전한 후방이 아니라 최전선에서 구르면서 죽을 위기도 겪었었다. 특히 아버지 부시는 그가 탄 뇌격기가 격추되었는데 운좋게 낙하산을 타고 해변가에 떨어져 가까운 미군 잠수함에 구조되었지만, 나머지 승무원들은 전부 살해당하고 일부는 [[치치지마 식인 사건|잡아먹히는 끔찍한 꼴을 당했다.]] 이렇게 사회 각계각층의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입대했으며, 심지어는 신체조건 미달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사람도 어떻게든 일본군을 때려잡기 위해 참전하려고 노력했다. 뒷날 대통령에 오른 [[존 F. 케네디]]는 심각한 호르몬 질환 때문에 이미 한번 면제 판정을 받았는데도 '''아버지의 연줄'''을 사용하여(!) 최전방으로 자원입대하여 [[어뢰정]] [[PT 보트|PT-109]]의 정장으로 참여했고, 그의 형인 조셉 케네디는 [[아프로디테 계획]]에 자원했다가 순직했다. 심한 경우 입대 불가 통지를 받은 청년이 낙담해 [[자살]]하는 사례까지 있었을 정도. 한 마을에서만 세 명이나 자살할 정도였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참전용사가 한 증언이다.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 [[더 퍼시픽]]을 비롯한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 창작물에서 멸치 같은 몸으로 어떻게든 군에 가려고 기를 쓰는 인물이 등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일이 흔했다. 이 중 [[오디 머피]]는 여리고 작은 키로 입대를 거부당해도 기를 써서 체중을 늘리고 문서를 위조해서 입대해 만화같은 전공들을 세우고 각종 훈장은 물론 명예훈장까지 살아서 받았다. 명예훈장은 죽어야 받을 수 있는 훈장이란 인식이 있을 정도다. 이를 살아서 받을 정도면 어지간한 전공으론 택도 없다. To Hell And Back 이란 영화에서 실제 전공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에 축소해서 묘사했을 정도. 캡틴 아메리카가 국뽕처럼 보여도 실제론 당대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심지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집총과 폭력 행위 일체를 거부하는 종교]]를 가졌으면서도 입대하여 비록 집총금지원칙에 따라 살생은 하지 않았으나 대신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구조작업을 벌여 [[명예 훈장]]을 수여받은 [[데스몬드 도스]] 같은 사례도 있다.[[핵소 고지]]라는 영화를 통해 알려져 있다. 물론 [[병역비리]]를 안 저지른 건 아니었으나, 병역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은 당연히 전후 평범한 삶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은 가고 싶어서 난리인데 사고도 아니고 비리로 안 갈 정도면 왕따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더 퍼시픽]]에서 자원입대가 아닌 징병으로 참전한 해병대원을 모자라는 사람으로 대우하며 마구 갈구는 장면이 나온다. 군에 입대하지 못한 [[할 뉴하우저]]는 거의 평생에 걸쳐 '2차대전 투수'라는 비아냥과 저평가에 시달리기도 했다.물론 수십만의 청년들이 독일, 일본과의 전쟁터에 갈려나가는 상황에 자기 혼자 빠진 병역기피자라면 욕먹어도 싸지만, 뉴하우저는 애초에 다른 메이저리거들과 마찬가지로 입대를 여러 번 신청했으나, 단지 다른 선수들과 달리 [[심장병]] 병력 때문에 미군이 받아주지를 않아서 참전하지 못했을 뿐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즉 당시 분위기가 좀 심하게 극단적이었다는 증거.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타자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들과 출신 불문 전망이 밝은 젊은 선수들 모두가 입대했다. 즉 '징병으로라도 참전한 사람'이나, '입대를 신청했으나 미군이 오지 말라고 해서 못 갔던 사람'들에 대한 대우도 이랬다. 그러니 병역을 대놓고 기피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어땠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의 말같지도 않은 오판과 달리 이렇게 극단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정도로 미국인들은 겁은 커녕 분노로 차올랐으며 전의가 충만했다. 전쟁이 진행되며 사상자가 누적되고 전쟁의 참상이 어느 정도 알려지면서부터는 입대 경쟁률도 좀 낮아졌다. 이때부터는 최소한 노골적인 병역기피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비난은 상대적으론 덜했으나 실질적으론 의미가 없었고 무자비했다. 전과자라 징집 대상이 아니고 본인이 군입대를 원치 않았음에도 병력이 부족하다며 징집됐다가 탈영하여 사형을 당한 [[에디 슬로빅]]의 예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